2021년 4월 20일 20시 대학로 콘텐츠 박스
1. 쉬는 날, 공연을 보러 오라는 내용의 카톡이었다.
2. 20일 퇴근을 하자 마자 대학로로 갔다. 공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미도인'이라는 식당에 찾아가 스테이크 덮밥을 먹었다. 외식이었지만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충분한 단백질과 달달한 간장소스 밥으로 만족하며 먹을 수 있었다.
3. 기존에 찾아가던 '스타벅스'(마로니에공원점)' 옆에 있는 '스타벅스(혜화역)'점을 찾아갔다. 카페인을 줄이려하지만 커피를 안 시킬 수 없었다. 아이스 카페라떼에 바닐라 시럽을 두 펌프 넣으면 바닐라 라떼가 나온다. 아내와 이야기하며 공연 시간을 기다렸지만 옆 테이블 이야기에 귀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팬더, 에버랜드, 하남시..
4. 공연 시간에 맞추어 공연장에 찾아갔다. 공연장은 삼삼뚝배기 옆에 있는 콘텐츠 박스.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공연 10분 전 배우가 등장하여 연기를 하였다. 배우의 연기를 보며 공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꾸며진 공간은 미용실. 파스텔톤으로 배스킨라빈스에서 판매하는 솜사탕 아이스크림 색과 매우 유사했다. 또한 무대 정중앙에 1~2층으로 통하는 정문이 있고, 그 옆에 미용실 직원만 드나드는 탕비실, 그리고 상수(객석에서 보았을 때 오른편)에 스윙도어가 있으며 이 문을 통해 1~4층으로 이어진다는 공간의 설정이다. 상수에는 또한 은근히 자주 등장하는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고, 무대 프론트 정중앙에는 머리를 감겨주는 샴푸 의자가 설치 되어있으며 실제로 물이 나오고 배우가 머리를 감는다.
5. 희곡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각색하였다. 아무래도 희극이다 보니 미국에서 미국인에게 통용되는 유머 코드가 있었을텐데 그것들은 21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맞게끔 바꾸었다. 예를 들어 드라마 <팬트하우스> 김소연 배우를 흉본다던지, 배우들이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을 춘다던지,
6. 이 극은 관객을 목격자로 설정하고 사건을 재구성하여 범인 찾는다는 이유로 관객이 배우에게 말하게끔하여, 극에 참여하도록 한다. 연극계에 흥미있는 이슈 중 하나는 바로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er)이다. 우리 말로 바꾸면 관객참여형 연극 정도로 번역한다. 교육 연극 시간에 배우는 연극의 그것과도 흡사하다. 문제적 장면을 살피고 해결책을 만들며 바람직한 모습을 만들어 내는 형식이 유사하다. <쉬어 매드니스>는 기존에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관객과 배우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제4의 벽을 통해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조용한 관객에서 제4벽의 벽을 넘어 배우와 함께 극을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관객의 모습을 지향한다. 생각보다 여러 사람이 목격자로 있으며 언급하는 정보들은 꽤나 유용하다. 물론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결정적 질문과 동떨어진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칫솔에서 정말 찌린내가 얼마나 나나요?" 같은 질문은 범인을 잡는 것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배우들이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이런 부분들이야 말로 배우를 성장시키는 순간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대처하는 방법 또한 배우의 역량 중 하나니까.
7. 관객이 참여하는 만큼 배우들도 갇혀있지 않고 자유로워진다. 1막에서 어느 정도 사건 설정과 전개가 끝이나고 관객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생기면 그 때부턴 배우들도 관객과 함께 논다. 놀 수 있는 이유는 '형사'가 있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을 법한 예상된 질문이나 사건을 진행함에 있어 나오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가 나왔을 경우 '형사'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이게 맞나요?' 관객은 '아니요'라고 반응하고 형사는 '그럼 방금 어땠죠?' 물어보며 계획하거나 설계한 방향으로 극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나간다. 이렇게 계획하고, 준비한 틀 안에서 배우들은 형사의 가이드를 통해 즐겁게 놀 수 있다.
8. 배우는 쉬지 않는다. 공연 시작 전 하우스 음악이 나올 때부터 배우는 연기하기 시작하여, 인터미션 시간에도 용의 선상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무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인터미션 때는 잠시 역할에서 벗어나 배우로서 관객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관객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주고 받고, 배우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며 긴장을 풀고 쉬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퇴장하지 않는다. 무대에서 움직이며 살아있다.
그들이 미용실(무대)를 나갈 수 있는 순간은 범인을 밝혀내고 공연이 끝날 때다.
9. 관객참여 연극이지만 그렇게 무례하지도 않다. 배우가 관객을 불러 춤을 시킨다던지, 노래를 부르게한다던지, 조롱이나 희화화를 통해 무안을 주며 바보로 만들어서 깎아내리며 억지 웃음을 짓게 만들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관객이 손들고 말한다.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냥 조용히 봤을 뿐이다.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하지 않았고 충분히 재미있었다.
10. 배우들이 다 잘 생기고 연기를 잘한다. 많은 회차의 팀이 지나가고 15년부터 지금까지 공연이 많이 반복되어 그런지 템포와 볼륨이 적절하게 잘 살려 포인트가 잘 들렸기 때문에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에게 웃음을 만들어 내는데 충분했다. 다만 마지막 장미숙(박수야 분)이 바이엘 하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독백의 대사는 볼륨이 너무 작아 전혀 들리지 않았다.
11. 연극은 진지할 필요가 없다. 두 시간동안 관객을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연극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다하는 것이다.
한 줄평 - 쉬어 매드니스에 취해 잘 쉬다 갑니다. 쉬어.
[본 글은 공연사의 초대권을 받아 보고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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