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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ter, Theatre, Performance

연극 <나의 투정> 몇 일 지나 하는 공연 후기

작가 이스윽 2021. 7. 12. 13:08

21년 7월 6일 20시 대학로 예술공간 혜화에서 연극 <나의 투정>을 보았다.

 

연극 <나의 투정> 포스터

 

<나의 투정> 포스터를 보면 포스트잇이 사정없이 붙어있다. 그 위에 공연명이 들어가 있어 사실 가독성이 좋은 포스터는 아니었다.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을지 제목과 포스트잇으로는 추측이 어렵다. 포스트에 있는 포스트잇의 내용을 보려 해도 중국어라 알 수가 없다.

극장 특성상 무대에 박혀있는 기둥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재미있게 처리했다. 포스터에 나오는 이 포스트잇을 활용하여 무대를 흥미롭게 구성했다. 포스터 잇으로 빼곡히 채운 극장의 문과 기둥, 그리고 벽은 도대체 어떤 내용의 포스트잇으로 가득 차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배우는 총 5명. 남자 배우 세 명과 여자배우 두 명이 나오고, 동시대를 살아가며 불만을 갖고 있을 법한 사항들을 배우들이 하나씩 말하며 연극은 시작된다. 그리고 장면은 '대리기사의 고충'으로 넘어간다. 무대는 빈 무대로 의자 두 개와 기사, 그리고 손님 한 명씩 들어오며 상황이 펼쳐진다. 술 취한 진상 손님, 강남으로 출근하는 하이 클래스 손님, 치열하게 삶을 사는 손님 등 다양한 손님을 만난다. 많은 손님을 만나며 겪는 어려움보다 더 큰 어려움은 시스템이 주는 배제였다. 들어온 콜을 자주 거절하면 시스템으로부터 배제되어 더 이상 참여하기 어려운 상태로 빠진다고 했다. 개인의 선택은 없이 강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대한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음 장면은 소장품 자랑을 하는 장면이었다. 흰 장갑을 낀 채 정장, 게임기, 맥북 등을 자랑하는 장면이었다. 서로의 소장품을 자랑하며 어떤 것이 가장 가치 있나 견주고 재는 내용인데 입으로만 하는 애국과 닌텐도 스위치를 보면 무언가 다 따로 노는 아이러니함에 웃음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게오르그 카이저의 <칼레의 시민들>을 요약하여 영화 소개 프로그램 형식을 빌어 보여주었다. '애국'이 국가에 의해 개인에게 강요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배우가 한데 모여 움직임으로 승부를 보는 장면이다. 연극을 보며 제일 재미있는 순간은 이렇게 배우와 배우가 맞닿을 때다. 5명의 연기로 칼레 속 긴박감과 박진감이 만들어진다. 검은 옷으로 배우의 특성조차 다 가리려 노력했다. 이쯤 되니 배우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면은 남자 배우의 어릴 적 추억을 다룬 에피소드가 나온다.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가 유명한 그 지역 출신 배우인데, 어느 지역인지 모르면.. 그냥 패스. 입으로 설명하고 몸으로도 보여주어 분명 이중 설명으로 따분해질 수 있는 장면이지만 잘 풀어내었다. 아마 배우들이 집중력 있게 연기하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이 장면쯤 오면 배우들이 땀으로 적셔진 단계다.

 

설명하지 않은 에피소드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이야기들이 다 배우들의 직접 경험을 이용한 연극 같았다. 그래서 다 보고 난 후 내가 느낀 점은 '다섯 명의 일기장'을 대놓고 들여다본 느낌이랄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 법한 정말 사소한 이야기나 생각을 포스트에 나와있는 포스트잇에 적어 보여준 느낌이었다.

 

연기하느라 땀 흘려 고생하는 배우가 멋있고, 코로나로 인해 많이 공유하지 못한다는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