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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와 지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 아서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리뷰

작가 이스윽 2021. 3. 14. 20:44

 

 

길을 지나가다 폐지 줍는 노인 분을 보았다. 눈 앞의 빌딩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 마스크 하나 제대로 쓰지 않고 크게 숨을 내 쉬며 리어카를 끌고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그분에 대해 연민과 동정이 생기는 것도 잠시,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불쑥 찾아왔다.

 

'내가 감히 다른 사람을 동정하거나 걱정할 때가 아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기대수명이 높아지며 나의 세대는 100세까지 산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노동을 통해 소득이 생기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더 이상 돈을 벌 능력이 없다는 것은 곧 죄악시된다. 냉정하지만 그렇다.

 

'65세에 나와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으면 남은 30년동안 어떻게 돈을 벌어먹고살아야 하지?'

 

오래 사는 건 축복받은 일이지만, 돈 없이 오래 산다는 건 저주받은 일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윌리는 30년간 외판원 일을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는 와이프 린다의 남편이자 비프, 해피 두 아들의 아버지다.

평범해 보이는 인물이고, 남은 여생을 이제 충분히 즐기며 제2의 인생을 맞을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린다: 밀린 보험료 내야 해요. 지금이 유예기간이에요.

윌리: 백 얼마던가?

린다: 1백8달러 하고 68센트 있어야 해도. 그러고도 모자라는 걸요.

윌리: 왜 모자라?

 

윌리는 남은 삶을 행복하게 즐기기엔 경제적으로 부족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경쟁력은 떨어지고 자연스레 벌어오는 수입도 줄어들었다. 노동의 한계에 부딪혔다. 외판원 일은 그만하고 본사로 들어가고자 젊은 사장에게 부탁하지만 뉴욕 본사에 경쟁력 없는 그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34년간 몸담았던 조직에서 윌리는 나오게 된다. 그는 그렇게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2021년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살펴보자. 요즘 젊은이들의 풀리지 않는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취업과 근로이다. 무수히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취업을 해도 오래 근무하지 못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일자리 평균 근속기간은 5년, 대기업 7.7년, 중소기업은 3.3년이다. 근무년수는 왜 짧아진 걸까?

 

윌리와 같이 조직에 충성한다 한들 조직은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현대 사람들은 알아버렸다. 조직이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과거 우리 아버지들은 조직에서 몸뚱이를 불살라가며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근면'과 '성실'로 중무장했다. 열심히 하고 상사에게 잘 보이며 승진하고 올라가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조직은 그 믿음에 부흥하지 못했다. IMF를 맞으며 많은 부모님들이 조직에서 나와야 했다. 출근하자 책상이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져 있는 이기적인 조직의 행태를 두 눈으로 보았다. 조직의 생존을 위해 아버지들은 희생당했다.

요즘 직장인들은 오전 9시만 되면 주식창을 보러 모두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아버지들을 보며 근로소득의 한계와 조직에서의 근속 기간을 간파해버렸다. 나아가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과 물가 인상에 평생 이렇게 일해도 내 집 한 채 마련 못하고 죽겠다는 공포가 사람과 사회를 바꾸어 놓았다. 

 

더구나 노동시장의 유연성 증가와 더불어 유능한 사람은 더 높은 연봉을 받고 이직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무한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

이제 30년간 한 조직에서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군이 많지 않다. 그래서 공무원과 같은 직업에 사람들은 목을 맨다. 그러나 평생직장이라 불리는 공무원의 평균 근속연수도 14.9년이다. 대기업에 비해 2배나 길지만 60세까지 정년을 채우는 인원도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비프: 뼛골이 빠지도록 일이나 하는 외판원에 불과해요. 결국 어떻게 됐죠? 다른 외판원들이나

마찬가지로 쓰레기통 속에 처박혔단 말이에요. 전 한 시간에 1달러짜리 인간이에요.

 

2막에서 큰 아들 비프는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게 된다. 비프는 '우린 남들과 달라. 우린 특별해'라고 말하던 아버지 윌리에게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저 1시간에 1달러짜리 인간. 자본주의 속 사람의 가치는 시간과 능력의 곱으로 정해진다.

아메리칸드림.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정의롭고 공정한 시스템 뒤에 있는 그늘진 인간소외 현상은 여전히 적용되는 듯하다. 다른 가치는 소용없다. 그것이 인간을 외롭고 병들고 미치게 한다.

 

같은 전문직 종사자이면서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구성원들 - 정교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계에서 배척당하는 비상근 조교수들이나 해고된 동료들, 심지어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 - 에 대해서는 어떠한 연민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팍팍한 삶을 사는 것은 놀랍거나 불공평한 일이 아니다. 세상일이 원래 그런 것이다.

- 토머스 프랭크,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p.50

 

능력주의 사회에서 일정한 자리 혹은 가치를 두고 다투는 경쟁이 당연하다고 느껴지지만, 이 경쟁의 승자가 되기 위해 과도한 경쟁의 스트레스로 개인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착취에 대해 승리를 위해 따라오는 필요조건이라 생각했다. 돈과 권력, 학벌 등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얻으려 무한 경쟁의 루프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 속에서 승자와 패자 모두 죽어갈 뿐이다. 진정한 승자는 없다. 마치 윌리가 보험금을 타내려 마지막 자동차를 폭주시켜 자살하는 것처럼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에 짓눌리는 인간들뿐이다.

 

무한 경쟁의 루프를 깨고 시골로 들어가거나, 절에 들어가기도 하고 다양한 삶의 양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며 깨닫기 위해, 더 가치 있는 것들을 찾고자 시스템에서 벗어나 넓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누군가는 '패배자', '어떻게 먹고살려고' 하는 등의 걱정과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것이 옳은지는 이제 각자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맡겨야 한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자본주의 사회 속 부품으로 전락하는 개인의 비극을 다룬다. 내 삶과 유사해 보인다. 요즘 내가 하는 걱정이 윌리와 맞닿아있다. 내 삶은 비극적인가? 윌리의 비극이 과연 윌리 개인만의 잘못인지 묻고 싶다.

<세일즈맨의 죽음>이 나온 지 72년이 지났다. 그러나 <세일즈맨의 죽음>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색하지 않다.

7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네 삶과 흡사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다. 돈 없이 오래 사는 저주를 받지 않도록 주식 급등주 뉴스를 기웃거리며 하루를 끝낸다.

 

오늘따라 커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