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3월 이맘 때쯤 학기초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뭐든 열심히 배워서 적성 맞는데로 갈라구요", "뭘할진 모르겠는데,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답답했습니다.
'왜 꿈이 없는거야? 진짜 이상하네. 배우고 싶다고 왔으면서 꿈이 없다고? 꿈이 있어서 죽어라 매달려도 될까 말까한 이 세상에 꿈 없이 살아간다고?'
"전공을 했다는 건, 전문적인 공부를 했다는 거야. 이걸로 밥 먹고 살 정도로 잘 해야한다고. 남들보다 뛰어나야해" 아직 대학도 안 간 고등학생들에게 꿈과 적성, 전문성에 대해 집착적으로 강요했었습니다. 전공으로 선택한 이 길에서 만큼은 프로페셔널 해야한다라는 강조와 함께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서 먹고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예술을 공부하겠는 학도로서 대가들이 한 길을 곧게 걷듯 이들에게도 그 장인정신을 지키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꿈이 없다고 하는 친구들에게 꿈까지 강요했습니다. "넌 이 전공을 해야만 해."
하지만 이제는 바뀌었습니다.
학생은 꿈이 없는게 아닙니다. 아직 정하지 못한 것 뿐입니다. 아직 선택하지 못한 채 진로를 찾고 있는 과정입니다.
학교는 학생이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는 교사로서 아이들이 최대한 자기 적성에 맞는 꿈을 찾도록 하는게 역할입니다.
결정적으로 학생이 어떤 진로를 정하든,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통해 자신이 행복하고 보람있어 한다면 그것으로 된겁니다. 전공을 살려서 먹고 살기 아니면 죽음 이런 양면적 생각이 저와 학생을 옥죄고 있었습니다.
의료의 발달로 인간은 이제 100세까지 살고, 4차 산업 혁명으로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한 우물만 파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 지는 사회가 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사회가 왔을지 모릅니다. 꿈이 없다는 건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고,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다는건 이렇게 복잡한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희망이 더 크다는 뜻으로 받아드려졌습니다.
그리고 꿈이 있다는 건 욕심이 있다는 겁니다.
욕심이 있다는 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겁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발전을 불러옵니다.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고 노력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꿈이 있는 친구들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전념하여 달려가면 됩니다.
개학하고 한 주가 지났습니다. 첫 수업은 서로 알아가기 위해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이름은 기본이고 사는 곳, 좋아하는 과목, 왜 이 전공을 택했는지, 어떠한 마음가짐이 되어있는지 각오를 말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올해도 여전히 자신의 꿈을 말하는 친구와 아직 꿈이 없다는 친구로 나뉘었습니다. 저는 꿈이 있다는 친구들에게는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교사로서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꿈이 없는 친구들에게는 꿈을 만들라고 강조하지 않습니다. 대신 내가 교사로서 너의 꿈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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