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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가면과 열등감 / 넷플릭스 <완벽한 타인> 리뷰

작가 이스윽 2021. 3. 13. 22:27

 

완벽한 타인 포스터

 

연기 공부를 하다 보면 '페르소나'에 대해 배운다. 고대 그리스 시대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말로 연출자의 의도를 잘 살리는 감독의 분신 같은 배우를 지칭하기도 한다.

배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이미지 관리를 위해' 여러 가지의 페르소나를 만든다. 

가면은 나의 본 모습이 아니다. 페르소나는 만들어진 이미지다. 사람들은 나의 진짜 모습을 모른다.

만약 만들어진 가면이 모두 벗겨지고 진짜 얼굴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게 되면, 주위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완벽한 타인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정보

 


 

40년 지기 네 남자와 그들의 부인이 함께 집들이 저녁식사를 한다.

서로의 가면을 벗기고 벗겨지기 전까진 모두가 한 식탁에 모여 고향 음식을 먹으며 포근하고 안정적인 시간을 지내는 듯싶다. 그러나 예진(김지수 분)의 제안으로 각자 핸드폰의 내용이 공개되며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누구에게나 들키지 않거나 숨기고 싶은 마음 속의 빨간 버튼이 있다.

 

우리는 이를 약점, 트라우마, 비밀, 열등감 따위로 표현한다. 

그리고 <완벽한 타인>에선 빌어먹을 진실 게임에 의해 숨기고자 했던 빨간 버튼이 눌러지고 모두에게 공개된다. 이제 내 옆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가장 먼 '완벽한 타인'으로 바뀐다.

 

-아내 몰래 집과 병원 담보로 한 사기를 맞는 가슴 전문 성형외과 의사, 석호(조진웅)

-준모(이서진)와 불륜을 저지르는 정신과 의사 예진(김지수)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영배(윤경호)

-57세 아줌마에게 매일 야한 사진을 받는 태수(유해진)

-남편 몰래 시어머니 요양원 알아보는 수현(염정아)

-직장 동료, 친구 와이프와 바람피우는 준모(이서진)

 

흥미로운 점은 모든 인물이 가진 비밀의 발단은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의식과 인정 받지 못했다는 열등감'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나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가?' '나는 남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지는가?' 등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다 한 번쯤은 해봤을 질문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구가 충족이 되지 않는다면 남은 그 욕구는 열등감으로 변하고 우리는 이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행동양식으로 부지불식간에 표출한다. 

사위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석호, 남자친구를 소개해주지 못하는 영배,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많은 등장인물들은 주변 사람으로부터 인정 욕구를 마치 비행 청소년의 행동처럼 발산하고 열등감을 해소한다.

 

왜 우리는 타인을 의식하며 인정받고 싶어하는가?

 


 

열등감은 다른사람에 비해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만성적 감정이다.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인정한다면 타인에게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열등감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열등감은 나의 약한 부분이다. 부정하거나 숨기고 싶은 나의 결점이다. 그래서 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열등감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숨긴다.

열등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행위는 자신의 약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꼴이 된다. 약점이 노출되면 강자에게 잡아먹힌다.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모두 가면을 쓴다.

 

약점은 숨겨야 한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신체적인 급소는 털이 생기면서 최대한 보호하고자 한다. 정신적 급소를 찔리면 예민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털 대신 페르소나를 만들어 정신적 급소가 다치지 않게 보호한다.

가면은 나의 열등감을 숨기는데 도움을 준다. 가면이 클수록 결점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가면이 완벽할수록 사회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영화에서 각 인물은 남들 모르게 자신만의 잘못된 방법으로 열등감을 해소해왔다. 그러나 가면으로 숨겨왔던 일탈과 비밀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벗겨진다.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정신적 급소를 찔려 위기 상태에 놓인 인물들은 안정적이었던 논리의 상태에서 비안정적인 비논리의 상태로 진입한다. 이성에서 감성에 가까워진다. 억제보단 충동에 가까워진다. 그렇게 행복하던 저녁식사는 소위 헬파티(Hell Party)로 변한다. 우는 정도의 감정표현은 기본이고, 분노를 참지못해 와인잔을 깨 결국 피를 보고, 역겨움에 토하고, 성기 노출에,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 된다.

가면을 벗고 마주한 진짜 얼굴에 서로 상처 받는다. 유지되던 사람간의 관계와 유대가 와인잔처럼 깨지게 되고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사람들, 내가 아는 것보다 낯설 수가 있거든'

 

카메라는 주로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픽스샷으로 고정시켜 보여주지 않는다. 한 인물을 찍을 때는 주로 클로즈 업하여 눈빛과 표정을 통해 인물의 급변하는 상태를 보여주고, 두 인물을 동시에 보여주는 투샷의 경우에는 바스트 샷 사이즈로 스태빌라이저를 활용하여 끊임없이 카메라가 움직이며 두 인물의 표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선사한다. 식사라는 일상의 평범한 이벤트와 식탁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자칫 단조로워지거나 지루해지기 쉬우나 연속적인 카메라의 이동으로 이미지상의 심심함을 벗어난다. 

또한 움직임이 있는 카메라 촬영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유기적인 사건과 인물의 감정상태를 보여주는데 효과적으로 쓰인다. 카메라가 움직이며 관객에게 화면에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정보를 간단없이 제공하기 때문에 인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과 그에 따른 반응을 충분히 낯설게 보여주고 있다.

 

가면을 벗은 진짜 얼굴을 보게 되는 순간 내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낯설어진다. 잘못 실현된 열등감이 만든 추한 일탈에 사람들이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턴 기저에 있던 본래 열등감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본인이 다치지 않기 위해 상대방이 저지른 그 행동에만 온통 집중한다. 그리고 공격받은 인물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붙이고 그 거짓말에 다른 거짓말을 덧붙이고, 결국 더 이상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이상한 것이 만들어진다. 화목해 보이던 저녁식사는 디저트도 다 먹지 못한 채 끝이 나버린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기에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다.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이론에 따르면 타인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는 낮지 않은 단계에 속해있다. 이렇듯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선 더더욱 가면을 벗고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페르소나를 벗어버린 나의 진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이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일은 바로 자신을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자괴감이나 우울감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자신을 아끼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기 파괴적인 모습은 나를 좀먹을 뿐이다. 나를 마주하지 못해 내가 낯설어진 경우다.

 

이제는 페르소나를 벗고 스스로 자신의 진짜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어떨까?

나를 사랑하는 마음, 나를 마주하는 용기, 그대로를 인정하는 포용의 자세가 절실하다.

 

 

 

p.s -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몇 시간의 일이기에 '연극으로 만들어지면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21년 5월 세종 M시어터에서 공연된다고 한다. 기대해봄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