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상에 스윽 스며들겠습니다.

Essay

포기할 줄 아는 용기와 살아가는 힘

작가 이스윽 2021. 2. 28. 21:54

 얼마 전 대학 동기 A와 통화를 하다가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님을 간신히 설득하여 삼수 끝에 연극학과에 들어온 동기 누나 B의 이야기였습니다. 대학 입학 전부터 뮤지컬 배우에 대한 강한 꿈과 의지를 가진 동기 누나였습니다. 졸업 후에도 자신의 뜻대로 현장에 나가 오디션도 곧잘 붙고, 인간성도 좋아 뮤지컬 무대에 자주 올랐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누나는 공연계에 남아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저의 바람이었나 봅니다. 10년간 해오던 배우 일을 접고 부모님이 계시는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정하지도 않았답니다. 지금은 지쳐있다고 일단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고 했답니다. 

 알고보니 지인이 뮤지컬 공연을 만든다고 가이드 녹음부터 이것저것 다 도와줬고, 다행히 공연은 다 만들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당연히 초연을 할 줄 알았던 그 누나는 제작사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 공연에 합류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공연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지금까지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로부터 많이 지쳤던 것 같습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결국엔 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웃을거라 생각한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는데 마치 제 꿈이 꺾인 것만 같아 마음이 너무 심란했습니다. 

 

B 누나와 직접 통화를 하였습니다.

"나는 누나가 다시 대학로에 올라올거라 믿어. 잠시 방학한다고 생각하자. 힘드니 잠시 쉬는 거야. 할 수 있어."

한 마디 말뿐이었지만, 저는 그 누나가 언젠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 누나로부터 특별히 별말은 없었고 전화는 끊어졌습니다.

 

B 누나가 영영 꿈을 포기할까봐 오히려 제가 더 조급해하며 이 이야기로 동기 A와 다시 통화하는데, A가 그러더군요.

 

"포기하는 것도 용기야. 그 누나가 알아서 잘할 거야.

힘든 사람한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야. 때 되면 오겠지."

 

생각해보니 10년간 하던 일을 모두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은 천직이라 생각했던 어떤 일이, 평생 한 우물만 파던 사람이 그 직업과 일을 한 순간에 포기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 사람이 느낄 감정은 어떨지 저는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B 누나의 일만은 아닐 겁니다. 혹은 배우라는 직업에 해당되는 일도 아닐겁니다. 

뉴스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코로나로 인해 자신이 하던 일을 모두 다 접은 채 새로운 일상에서 버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관광업을 하다 하루아침에 라이더가 된 아빠. 직장을 다니다가 눈 떠보니 붕어빵을 팔고 있는 엄마. 승무원으로 비행기를 타다가 어느새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는 누나. 자신의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우울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분들에게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고, 강한사람이라고.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잠시 다른 일을 선택하는 것도 모두 용기있는 일이라고. 어쩌면 무엇을 하든 이 세상에 살아서 버티는 자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끝까지 살아서 견뎌냅시다.

저도 살기 위해 발버둥 제대로 쳐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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